요약
민주광장 화단 한켠에 자리한 작은 비는 故엄희완옹의 추모비이다. 故엄희완옹은 1936년 4월 성신여학교 창립과 함께 교내수위를 담당하셨는데 6·25 포화 속에서 학교를 지키고자 노력하다 병을 얻어 순직하셨다. 비문에는 故엄희완옹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 글이 적혀있다.
민주광장 화단 한켠에 잡초들 사이로 작은 비가 놓여있습니다. 6·25 때 학교를 수호하다 순직한 고(故)엄희완옹의 추모비로 1956년 4월 28일 세워졌습니다.
고(故)엄희완옹은 1936년 4월 성신여학교 창립과 함께 교내수위를 담당하셨는데 6·25의 포화 속에서 학교를 지키고자 노력하다 병을 얻어 순직했다고 합니다.
비문에는 고(故)엄희완옹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며 후대의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엄희완옹(嚴熙完翁)에게 드리나이다
엄옹(嚴翁)은 광주인(廣州人)이니 슬하(膝下)에
일자녀(一子女)없이 초동(樵童)과 더불어 향리산곡지간(鄕里山谷之間)에 의빙(依憑)하여 소색(小穡)으로 안빈(安貧)터니
성신여교(誠信女校)를 창립하매 희희(喜喜)로 응(應)하여 교내수직(敎內守直)을 담당(擔當)함이 십여성상(十餘星霜)이러라.
옹성(翁性)이 즉직근면(則直勤勉)하여 매사(每事)에 충실성신(忠實誠信)한지라.
천음우습(天陰雨濕)한 여름밤을 섬돌에 서 새우고 견빙재수(堅氷在鬚)한 겨울밤을 복도(複道)에서 새우면서 옹(翁)은 항시천분(恒時天分)에 만족(滿足)했고
참상(慘狀)육이오(六二五)의 포화(砲火)속에서도 최후(最後)까지 학교(學校)를 수호(守護)하였으니 장(壯)하도다.
오호(嗚呼)라 향년(享年) 육십칠(六十七)로 천명(天命)을 다한지어언(於焉)
육년옹(六年翁)의 몽매(夢寐)에도 못잊던 학교(學校)에 이 비(碑)를 세워 옹(翁)의 성심(誠心)과 공로(功勞)를 길이 찬양(讚揚)하노라.
병신(丙申)사월이십팔일(四月二十八日)
성신학원(誠信學園)
엄희완 어르신에게 드리나이다
엄어르신은 경기도 광주 출생으로, 슬하에 자녀도 없이 초동(나무하는 아이)과 함께
고향 골짜기에 의거하고 작은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지만 평안히 지냈다.
그러다 성신여학교가 창립되면서 기쁘게 학교내 수위 직에 응하여 그 업무를 담당함이 십여년이라
어르신의 성심이 곧고 근면하여 매사에 충실하고 정성과 믿음이 깊었다.
하늘이 흐리고 비로 습한 여름밤을 섬돌에서 세우고,
수염이 단단하게 얼음처럼 굳는 겨울밤을 복도에서 세우면서 항상 하늘이 준 분수에 만족했고,
6·25 참삼의 포화 속에서도 끝까지 학교를 지켰으니, 장하도다.
오호라 향년 67세로 천명을 다했구나.
어느새 6년이 지나 어르신이 꿈에도 못잊던 학교 교정에 이 비를 세워 어르신의 성심과 공로를 길이 챤양하노라.
1956년 4월 28일
성신학원
성신을 현재 모습으로 가능하게 한 힘은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맡은 바에서 최선을 다했던 보이지 않는 손들임을 기억한다면,
비문 앞에서 바삐 지나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성신사랑의 마음을 깊이 새겨보는 건 어떨까요?